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앨프리드 히치콕 (문단 편집) == 일화 == * 평소 이미지와 다르게 유쾌하고 장난도 잘 치는 성격이었다. 영화 촬영 중 조명기사 한 사람이 자신은 몸이 밧줄에 결박당한 채로 스튜디오에서 하루를 버틸 수 있다고 자랑하자 히치콕이 그에게 내기를 걸었고, 조명기사를 밧줄에 묶고 스튜디오를 나서면서 설사약이 잔뜩 든 커피를 건넸다고 한다. 결과는 어찌 되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또한 TV 드라마 시리즈인 〈히치콕 극장〉에서는, 자기가 감독하지 않은 작품이라도 앞뒤에 꼭 직접 등장해서 작품 내용과 약간 관련된(?) 개그를 하고는 했는데, 이것들이 아주 걸작이다. 온갖 [[블랙 코미디]]와 함께, 광고를 사이에 집어넣는 [[스폰서]]들을 신랄하게 까는 등. * [[파일:ljTUcLY.jpg]] [[파일:fBdVPDG.jpg]] [[파일:4QgVCCZ.jpg]] [[파일:fLDk04y.jpg]] [[파일:uk3Uu20.jpg]] 손녀가 자신에 대한 리포트를 쓸 때 히치콕이 도움을 줬다. 그러나 교수의 평가는 'C'였고, 이유는 조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히치콕은 손녀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화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점과 연관되어 유명해졌다. 원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을 기계적으로 해석하여, 창의성을 배제하고 오직 출제자가 원하는 답만을 요구하는 수능시험의 현실이 그대로 일치하기 때문. 물론 과대해석이라는 의견도 있다. * 자신의 이미지 마케팅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비록 히치콕은 인터뷰에서 "[[카메오]]로 출연할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이다"라고 말은 했지만, 매 영화마다 자신이 감독한 영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항상 자신이 화면의 중심에 보이도록 장면의 구도를 잡아놓고 카메오 출연장면을 찍었고, 자신의 이름을 본뜬 잡지와 TV시리즈를 만들었다. 감독 경력 초창기에는, 영화계에서 일하는 주변 동료들에게, 일부러 자신에 대한 괴상한 소문이 영화 제작자들 귀에 들어가도록 퍼뜨려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 〈[[사이코(영화)|사이코]]〉가 개봉된 뒤, 히치콕은 어떤 남자로부터 아주 재미있는 항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제 딸이 〈[[디아볼릭]]〉을 본 후부터 목욕을 하지 않으려 하더니, 〈사이코〉를 보고 나선 샤워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히치콕은 그 남자에게 간단하게 답장을 써서 보냈는데 그 내용은 '''드라이 클리닝을 하시죠'''. * [[티피 헤드런]]의 딸 [[멜라니 그리피스]]는 히치콕 감독으로부터 실사 크기의 헤드런 인형이 들어가 있는 모형 관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헤드런과 히치콕 사이에 점점 금이 가다가 〈마니〉 촬영 당시, 티피 헤드런과 히치콕이 아주 심하게 말싸움을 했는데, 이때 헤드런이 히치콕한테 돼지라고 모욕을 했다. 당연히 히치콕은 분노했고, 다시는 헤드런과 작업하지 않았다. * 〈사이코〉를 완성하고 히치콕은 주변 동료들을 불러 비공개 시사회를 가졌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엄청난 영화라며, 특히 샤워신은 영화사(映畵史)에 있어 길이 남는 장면이 될 거라고 히치콕을 칭찬하고 있는데, 가만히 영화를 보고 있던 히치콕의 부인이자 영화 편집자이기도 한 앨마 러바일이 샤워신은 다시 편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들이 영문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리자 앨마가 말하길, "[[자넷 리]]가 이미 죽었는데 침을 삼켰어요". 그 말을 들은 히치콕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다음 날 샤워신을 재편집했다고 한다. 그 외에 본래 히치콕은 샤워신에 자넷 리의 비명소리 외에는 무음으로 처리하려 하였는데 앨마가 버나드 하먼이 새로 가져온 음악을 듣고 샤워신에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여 현재의 샤워신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 부모님으로부터 엄격한 가톨릭식 금욕주의 교육을 받은 데다가, 결혼하기 전까지 여성과의 교제를 해본 적이 없던 히치콕은 여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영화 촬영도중 생리 기간이었던 여배우가 시나리오의 물속에 들어가는 장면 촬영을 거부했는데, 히치콕은 이때 카메라맨으로부터 여성이 [[월경|생리]]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히치콕이 결혼하기 한 달 전의 일이다.''' 실제로 스릴러적 연출에 있어서는 가히 신급인 히치콕이지만, 그의 영화 속에서 적잖게 나오는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는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개연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썸도 제대로 탄 적 없는 상황에서 뜬금없는 시점에 사랑 고백을 한다던가 등. 그런데 바로 상대방이 받아준다.[* 예를 들어, 영국 정보국에서 지시한 특수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처음 만난 남녀공작원이, 정부가 지정한 사람을 며칠 동안 찾다가 그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고 나서, 남자주인공이 그 사람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그때 갑자기 여주인공이 울며, "나는 사실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을 사랑했어요. 근데 그런 당신이 사람을 죽이려 계획하다니⋯ 믿을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주인공은 "사실 나도 그렇소. 미안하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묘한 게이적 코드를 읽는 평론가들도 있다. * 은근히 변태적인 성향이 영화에 묻어나온 데다 금발 미녀들을 선호하며 굴린 일화 때문에 오해를 사곤 하지만, 부인인 앨마 러바일과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훗날 앨마는 영화 편집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중 갑자기 히치콕과 결혼한 이유를 인터뷰어에게 질문받자, "배 안에서 폭풍우 치는 날씨 때문에 안 그래도 예민한 신경이 더욱 예민해져 있는 여성에게, 갑자기 동료가 비를 다 맞아가면서 고백을 하면 당신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걸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듯 부인도 히치콕 못지않게 재능 있는 데다 성깔 있는 인물이어서, 히치콕은 공처가로 유명했다. 앨마가 저녁을 차릴 시간인 6시 전에는 항상 영화 촬영 스케줄을 끝냈고, 배우 선정이나 대본 수정, 최종 편집에도 앨마가 깊게 관여했다고 한다. 아내인 러바일은 동갑에 생일도 겨우 하루 늦은 1899년 8월 14일생이었다. 1982년 7월 6일에 만 82세로 남편을 따라갔다.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에 징집대상으로 지목되었지만, C3[* 비대한 몸집과 알려지지 않은 건강상의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로 분류되어 면제받았다. 그러나 국내기지에서만 조건부로 복무를 할 수는 있었기에 그는 왕실 공병대의 사관생도 연대에 자원입대했다. * [[스필버그]]가 히치콕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히치콕 본인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죠스 라이더의 목소리를 연기했기 때문에 죠스를 만든 스필버그를 볼 때면 자신이 남창이 된 것 같이 소심해져서 거절했다고 한다.[[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4535|#]] * 사실 작품의 플롯에 구멍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나는 영화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다. 처음부터 원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적당한 개연성을 부여한 수준의 각본을 의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히치콕 본인은 이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와 작업했던 극작가 리처드 말리봄(Richard Malibaum)의 회상에 따르면 영화의 한 부분이 비논리적이지 않냐며 말리봄이 묻자 히치콕은 '''난 논리에 관심없다. 내가 관심있는 것은 효과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뒤에 "관객들이 논리에 대해 생각할때는 영화를 보고 집에 갈 때고 그때면 이미 티켓 값은 다 낸 후"라고 덧붙혔다. [[http://screenprism.com/insights/article/do-plot-holes-matter|#]]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